고교학점제 폐지 촉구를 위한 교사 서명 결과 발표 기자회견
- 교사노동조합연맹·전국교직원노동조합, 고교학점제 폐지 촉구
- 교육 주체들이 함께 참여한 공론화 과정 마련 요구
- 교사 정원 확보, 절대평가 도입 등 근본적인 지원과 제도 개편 요구
○ 일시 : 5월 8일(목) 오전 11시
○ 장소 : 정부서울청사 정문
○ 기자회견

○ 자료 (당일 현장 배포 및 메일 발송) : 기자회견문 및 발언문
○ 문의 : 장세린 교사노조 대변인 010-7728-1264
[여는 발언 1]
이보미 교사노동조합연맹 위원장
존경하는 동료 교사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해주신 언론인과 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
우리는 오늘, 교육의 본질을 지키기 위한 목소리를 내고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고교학점제는 시작부터 이상적인 취지를 내세웠습니다. 학생의 선택권 보장, 맞춤형 교육, 진로 중심수업. 그럴듯한 말들이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이상은 제도라는 이름으로 현장에 던져졌을 뿐, 실행 가능한 준비와 뒷받침, 사회적 합의의 과정은 없었습니다. 현장 전문가인 교사들의 의견은 들은 적도, 반영된 적도 없습니다. 결국 고교학점제는 교실을 실험실로 만들었고, 소중한 학생들을 시험대에 세웠습니다.
우리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습니다. 출결부터 준비되지 않아 수업은 무너지고, 교사의 행정 부담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늘어났습니다. 대입개편안과 모순되는 정책 탓에, 학생들은 과목선택이라는 미명 아래 더욱 치열한 경쟁에 내몰립니다. 과도한 이수제 기준은 낙오자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왜 이것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납득할만한 설명이 존재하지 않는 제도가 지금의 고교학점제입니다.
이것이 교육입니까?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학교입니까? 교육은 실험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실은 정치적 실험장이 아닙니다. 교사는, 교육의 최전선에 서 있는 현장 전문가입니다. 오늘 우리가 외치는 고교학점제 폐지 요구는 단순히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닙니다. 학생이 불안하지 않은 교실. 교사가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학교. 그 당연한 현실을 되찾기 위한 외침입니다.
더 늦기 전에, 더 많은 상처가 생기기 전에, 우리는 이 파행 운영되는 제도를 멈춰야 합니다. 교육부는 더 이상 책상 앞에 앉아 꿈만 꾸지 마십시오. 현장을 보십시오!
교사의 목소리를 들으십시오! 그리고, 지금 당장 이 파행을 멈추십시오!
감사합니다.
[여는 발언 2]
박영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학생이 진로와 적성에 맞는 과목을 선택하고, 학생의 자율성과 책임감을 기르고 학습 동기를 높이겠다”는 고교학점제가 시행된 지 두 달이 지나갑니다.
학교현장은 이대로는 안된다고 아우성입니다.
단군 이래 고등학교 교사들이 가장 화났다는 웃지 못할 얘기들도 나옵니다.
학생과 학부모는 불안, 교사는 부족, 업무는 대란, 학교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3월이 되자마자 출결문제가 터졌고 분노한 전국 고등학교 교사들의 목소리에 교육부는 화들짝 놀라 땜질 처방을 했습니다.
이제 최소성취수준 보장, 소위 최성보가 다가옵니다. 대학교처럼 운영하겠다던 교육부는 미이수 학생이 발생하지 않도록 교사들을 다그칩니다. 40% 미도달이 예상되는 학생들은 자신이 제대로 학교를 다닐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섭니다.
학생들은 조기에 진로선택을 강요받고 불안한 학부모들은 사교육 컨설팅 시장으로 내몰립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학기당 과목 개설에 따른 생활기록부 기재 문제, 다교과 다학년 지도문제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교사정원은 대폭 줄여놓고, 심지어 대입제도와 엇박자를 내고 있으니 학생, 학부모, 교사 모두 괴로운 고교학점제입니다.
학생들은 학급이라는 울타리에서 공동체를 배웁니다. 하지만 고교학점제는 학급을 해체 시키고 또래관계를 약화시킵니다. 또한 도농 간의 교육불평등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 3학년으로 확대적용 될수록 문제는 계속 터져 나올 것입니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운 이런 문제들을 교육부는 예상하지 못했습니까?
예상하지 못했다면 무능한 것이고, 예상했다면 무책임한 것입니다.
전교조는 지난 7년 동안 시범학교를 통해 드러난 문제들과 예상되는 문제들을 계속 제기해 왔습니다. 하지만 교육부의 책임 있는 대책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오늘의 이 기자회견은 고쳐쓸 수 없는 고교학점제에 대한 고등학교 교사들의 폐기 선언입니다. 교육부는 더 이상 현실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학생들을 실험도구로, 학교를 실험장으로 쓰지 말 것을 경고합니다.
[발언 1]
김자영 서울교사노동조합 중등정책국장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소재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1학년 부장을 맡고 있는 고등학교 교사 2년차, 총 교육 경력 7년차 교사입니다. 제 소개를 들으신 많은 선생님께서는 의아하실 겁니다. 20대를 갓 벗어나 교육 경력도 짧은 제가 1학년 부장이라는 자리를 어떻게 맡을 수 있었을까요? 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도입이 베테랑 교사들마저 피하고 싶을 만큼 학교 현장에 큰 불안과 걱정을 안겼기 때문일 겁니다.
1학년 부장으로서 고교학점제에 따른 변화를 최전선에서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각오를 다졌지만, 새로운 출결 시스템이 학교 현장에 가져온 대혼란은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기존에 담임교사가 일괄처리하던 출결을 수십 명의 교과 교사들이 나눠 가지게 되면서 교사들의 부담은 몇 배로 늘었습니다. 학교 내부 메신저로는 쏟아지는 출결 정정 요청을 감당할 수 없어 만들게 된 1학년 교과 교사 단톡방은 하루에도 출결 관련 카톡이 수십 개가 쏟아집니다. 바쁜 조회를 마친 담임교사가 1교시 수업을 들어가기 전 카톡방에 각 학급 결석과 지각 현황을 알리면 교과 교사가 그 톡을 확인하고 출결에 반영합니다. 일과가 끝나면 담임교사는 교과 교사가 출결을 제대로 입력했는지 확인하고 다시 교과 교사에게 수정을 요청한 후 수정 사항이 제대로 반영되었는지 한 번 더 확인하여 출결을 마감합니다.
물론 학급의 모든 학생이 제시간에 등교하여 예쁘게 교실에 앉아 수업을 듣고 귀가한다면 그렇게 힘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완벽한 학급이 과연 몇 곳이나 존재할까요? 저희 반에는 3월부터 단 하루도 교실에 들어오지 못한 학생이 있습니다. 이 학생은 매일 아침 교실 대신 위클래스로 등교합니다. 그 시간마저도 어느 날은 9시, 어느 날은 10시, 어느 날은 11시입니다. 그리고 귀가 시간도 자유로워 어느 날은 오전 11시에, 어느 날은 오후 12시에 조퇴합니다. 이렇게 지각과 조퇴를 반복하던 이 학생이 두 달간 제시간에 등교해서 제시간에 귀가한 날은 겨우 이틀입니다. 그 외의 모든 날의 출결을 처리하기 위해 담임교사인 저와 위클래스 상담교사, 저희 반 수업을 들어오는 모든 교과 교사들이 얼마나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았어야 했을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기존처럼 담임교사가 나이스에 일괄 출결을 입력하는 시스템이었다면 월말에 30분 정도의 작업으로 끝날 일을 매일 한 시간씩 붙들고 끙끙거려야 하다니 비효율적이기 그지없습니다.
지난주 저희 학교는 중간고사를 치렀습니다. 학생들은 학기 초부터 성적이 낮으면 보충 수업을 들어야 한다며 불안해했습니다. 시험을 보고 난 이후에는 1등급을 받지 못하면 수도권 대학 진학이 불가능하다며 그냥 자퇴하고 싶다는 자조 섞인 탄식을 내뱉기도 했습니다. 교사들은 최소성취수준 예방지도 학생을 어떻게 모집할지 몰라 막막해하고 있습니다. 올해 저희 학교에는 최소성취수준 보장지도를 위한 운영비로 44만원이 내려왔습니다. 1년 총예산이 44만원입니다. 학생에게 나눠 줄 교재와 간식을 구입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마저도 교사를 위한 지도비는 0원입니다. 그럼에도 사명감으로, 봉사정신으로 기꺼이 예방지도를 하겠다고 나선 선생님들이 계셨지만 학교에 남아 나머지 수업을 듣고 싶지 않다, 차라리 따로 학원을 다니겠다는 학생들의 거부에 곤혹스러워하고 계십니다. 교육청은 이런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며칠 전 예방지도 운영 현황을 제출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냈습니다. 교사도, 학생도 원하지 않는 예방지도를 거짓으로라도 꾸며내어 엑셀 파일을 예쁜 숫자로 가득 채워 제출하는 것이 교육청이 원하는 결과인지 묻고 싶습니다.
고교학점제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저에게 주어진 시간이 5분이기에 현재 학교에서 가장 힘든 두 가지만을 말씀드렸습니다. 1학기 말에는 2학년 선택과목을 안내하는 가정통신문이 나갈 텐데, 진로와 적성보다는 대입에 유리한 과목을 선택하려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일 학생들의 모습이 벌써 눈에 선합니다. 학년 말에는 출석률과 성적이 낮아 진급하기 어려운 학생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이 학생들을 구제하기 위한 교육청 공문이 언제쯤 내려올지 전전긍긍하게 될 저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부디 교육부와 교육청에서 이 혼란을 해결할 수 있는 합리적인 해결책을 하루빨리 찾기를 바라면서 현장 발언을 마치겠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발언 2]
이재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경기지부장
고등학교 국어교사 이재민입니다. 고교학점제라는 괴물이 현장을 어떻게 병들게 하고 있는지 4가지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첫째, 단군 이래 가장 화가 난 고등학교 교사들의 과중한 업무입니다. 교사 정원은 대폭 감축한 상황에서 교사 1명이 서너 과목을 도맡고 있습니다. 다학년, 다교과의 수업 준비, 수행평가/지필평가 문항 출제 및 실시, 생활기록부 작성 등의 업무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단 한 문제만 오류가 생겨도 소송이 걸리는 살벌한 고등학교에서 교사들의 스트레스는 이미 극에 달했습니다.
둘째, 2026년 본격적 선택과목 수강에 따른 어려움입니다. 이게 정말 학생들을 위한 행복한 \'선택’일까요? 아닙니다. 실제로 2학년 때 들을 선택과목 조사가 벌써 시작됐지만, 상당수 1학년들은 아직 진로를 못 정했습니다. 과목 선택에 따라 내신 유불리가 있는 데다 중간에 진로가 바뀔 경우 입시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보니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열일곱 살 학생들에게도, 고1 담임에게도 이른 시기 진로 선택은 가혹한 일입니다.
내신과 수능을 따로 준비해야 하는 것도 부담입니다. 선택과목 없는 통합형으로 바뀌는 2028학년도 수능부터는 고1 공통과목에서만 출제되는 만큼, 2·3학년 때의 선택과목 성적은 내신등급에 활용될 뿐입니다. 교실에서 벌어지는 수업 파행이 불 보듯 뻔합니다.
셋째, \'미이수 제도\'로 인해 수많은 자퇴생이 속출할 것입니다.
이제 졸업하려면 과목별 출석률 3분의 2 이상, 학업성취율 40%를 넘겨 192학점을 들어야 합니다. \'미이수 학생’으로 낙인찍힌 아이들은 가뜩이나 학습 무기력과 공부 상처에 시달리다, 그나마 한 손에 쥐고 있는 고등학교 졸업이라는 꿈마저 포기하게 될 것입니다.
교사는 미이수 학생을 쫓아다니며 지도하느라 진땀을 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보호자로부터의 민원도 오롯이 교사의 몫이겠지요. 방학 때도 미이수 학생들은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쉴 권리를 박탈당할 것이고, 교사들은 열정 페이를 강요받으며 미이수 학생과의 보충 수업을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 이거 누가 행복한 제도입니까?
넷째, 공동체가 붕괴된 교실입니다. 제가 고3 담임을 할 때였습니다. 우리 반 학생에게 “철수야, 너 뒤에 영희한테 이것 좀 전달해 줄래?”라고 했을 때 돌아온 답변은 “영희가 누구예요?”였습니다. 충격적이었습니다. 같은 반이 된지 1년이 다 되어 갔지만 철수는 영희가 누군지 몰랐습니다. 선택과목대로 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선택과목이 다르면 같은 반 친구도 잘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 와중에 아이들은 서로가 서로의 경쟁자이기도 하죠.
유대감이 없는 교실에서 학생들의 정서는 병들어가고 학폭은 수시로 발생합니다. 교사는 자기 반 학생을 조회, 종례 시간에만 보기도 하고 서로 어색해하는 아이들, 침묵하는 아이들 앞에서 진땀을 빼며 수업을 하기도 합니다.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되면 현재의 학급 체제가 의미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끝맺겠습니다. 현재의 대입 체제가 유지되고 대학서열화가 해소되지 않는 한 \'고교학점제’는 \'대한민국 고등학교 현장에 맞지 않는 옷’입니다. 제발, 무턱대고 정책을 밀어넣고 \'하라면 해’라고 하지 마십시오. 교육 전문가인 현장 교사들의 목소리를 들으십시오. 전교조는 교육주체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학교를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입니다. 투쟁!
[기자회견문]
<고교학점제 폐지 촉구를 위한 교사 선언>
\'교육의 이상’이 아닌 \'파행의 현실’이 된 고교학점제
2025년 전면 시행된 고교학점제는 경쟁 위주의 입시교육 완화를 위한 \'학생 선택권 보장 및 맞춤형 교육’이라는 이상을 내세웠지만, 현실은 정반대이다. 고교학점제는 개혁이 아닌 개악으로, 공교육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혼란을 초래하는 실험적 제도로 전락했다. 교육현장은 심각한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우리 교사들은 교육자로서 더 이상 침묵할 수 없기에 이 파행적 제도의 즉각적인 중단을 요구한다.
초(超)경쟁 속에 무너지는 학생들
고교학점제는 자유로운 선택을 통한 진로 맞춤형 교육을 지향한다고 하나, 실제로는 선택을 가장한 또 다른 경쟁 장치에 불과하다. 학생들은 자신의 적성과 흥미에 맞는 과목을 선택하기보다는 대학 입시에서 유리한 과목을 선택해야 하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내신 상대평가의 확대와 2028 대입 개편안은 과목 선택의 자유를 사실상 무력화시키며 경쟁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이미 한 줄 세우기식 내신 등급 산출을 위한 지필평가와 수많은 수행평가로도 학생들은 충분히 숨이 막히는 상태이다. 그에 더해 대입에 유리한 과목 선택과 기본학점 외에 추가 학점 이수를 위한 다른 학교나 외부 기관의 과목 선택은 학생들의 학업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심리적 불안을 조장하고 있다.
교육부는 고등학교에는 학생의 진로에 따른 선택권을 보장하라고 하나, 대학에게는 자유전공학부를 확대하라고 한다. 이 무슨 모순인가? 학생들은 무리한 진로 결정을 강요당하고 있다. 다양한 경험과 실패를 통해 자신을 알아가고, 진로를 탐색해야 하지만 입시 현실과 현재의 고등학교 시스템에서는 불가능하다. 더욱이 고등학교 1학년 때 결정한 진로를 2, 3학년 때 수정하게 될 경우, 입시에 불리해질까 두려워 심한 경우 자퇴를 고민하기도 한다. 현재의 고교학점제는 비교육적일 뿐 아니라 비인간적이다.
또한 기존 학급으로 묶였던 학습 공동체는 해체되고 있으며, 학습 부진 학생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최소 성취수준 보장지도는 하위권 학생들에게 낙인효과를 유발하고, 위기학생들의 학교 이탈까지 부추기고 있다.
교육격차와 신(新) 사교육 체제로의 이행
고교학점제는 복잡한 교육과정과 평가 체계로 학생과 학부모 모두에게 큰 혼란을 주고 있다. 자율이라는 명분 아래 주어진 수많은 선택지 앞에 학생과 학부모의 고민과 불안은 더 커질 수 밖에 없으며, 사교육 시장은 그 불안을 먹으며 더 팽창하고 있다. 자본과 정보력을 가진 가정은 사교육에 의존하게 되며, 과목 선택과 진로 설계마저도 사교육 컨설팅의 영역이 되었다. 사설 교육기관은 고교학점제에 맞춘 과목별 강좌, 입시 설계, 학생부 관리 등 다양한 상품을 내놓고 있으며, 이는 교육의 공공성을 훼손하고 있다.
학생들은 내신 성적 관리에 유리한 학생 수가 많은 대규모 학교로 몰리며 지역의 소규모 학교는 존립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처럼 고교학점제는 단지 사교육 팽창을 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계층과 지역 간 교육격차를 벌이고 있다. 정보 접근성과 교육 자원의 불균형,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학생의 학업 경험은 극명하게 달라지고 있다.
교육 당국은 온라인 교육과정, 공동 교육과정을 그 대안으로 말하고 있지만, 우리는 코로나 시기를 통해 온라인 수업의 한계를 확인하였다. 온라인 수업은 대면 수업의 질을 절대 따라올 수 없다. 공동 교육과정 역시 도시의 대형 학교에는 보완책이 될 순 있지만, 농산어촌이나 소규모 일반고에는 실효성이 없다. 선택지는 늘었지만, 정작 선택할 수 있는 자원과 여건은 누구에게나 평등하지 않다.
고교학점제는 보편적 교육권을 해체하고, 선택 가능한 일부만을 위한 교육 체제, 즉 신(新)사교육 체제이자 교육 양극화를 고착화시키는 제도로 전락하였다.
한계를 초과한 살인적인 노동량으로 인한 교사 소진
학생들이 겪는 혼란과 부담은 그대로 교사의 업무 과중으로 이어진다. 학생의 선택과목 보장을 이유로 과목 수는 몇 배로 늘어났으나, 학령인구 감소를 이유로 교사 정원은 오히려 축소되고 있다. 가르쳐야 하는 과목이 늘어나면, 수업 준비, 평가, 생활지도, 학생부 기록, 상담까지 교사 1인이 감당해야 할 몫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한 사람의 교사가 감당할 수 있는 노동량을 이미 넘어버렸다.
여기에 공동 교육과정 운영, 시간표 편성, 외부 연계 수업 관리 등 수많은 행정 업무까지 더해지면서 학교는 소규모 대학처럼 운영되지만, 그에 맞는 인력 지원과 시스템은 턱없이 부족하다.
고교학점제를 둘러싼 수많은 혼란은 제도 자체의 문제에 교육부의 무책임하고도 무능한 정책 추진 방식까지 더해져 혼란을 더욱 키우고 있다. 최근 고1 출결 처리 역시 탁상행정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최소 성취수준 보장지도 운영 지침은 학교 현장의 유연성을 강조하나, 이 역시 서류만 완벽하게 갖춰 놓으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실질적인 지원 없이 모든 책임과 부담을 학교와 교사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교육의 질은 곧 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 지금의 노동조건은 교사로 하여금 본연의 교육활동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이는 곧 수업의 질, 평가의 공정성, 기록의 신뢰도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교사들의 소진은 고등학교 탈출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교육의 지속가능성 자체를 위협한다. 우리 교사들은 자긍심 있는 교육전문가로서 학생들을 만나고 싶다.
<우리의 요구>
하나. 고교학점제 전면 폐지하라. 입시와 충돌하는 교육과정, 현장을 외면한 교육 당국의 탁상행정과 준비 부족으로 학교는 심각한 혼란에 빠져 있다. 교육부는 책상 앞에서 이상만 그릴 것이 아니라, 현장의 어려움을 직시하고 책임 있게 대응하라.
하나. 교육 주체들이 함께 참여하는 공론화 과정을 다시 마련하라. 교육 당국의 일방적 추진이 아닌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책을 결정하고, 특히 현장 교육전문가인 교사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라.
하나.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교사 정원 확보, 절대평가 도입 등 근본적인 지원과 제도 개편을 추진하라. 학령인구 감소를 이유로 한 교사 감축이 아닌, 교육의 질 보장을 위한 적정 교원 수 확보가 필요하다.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는 상대평가에서 벗어나야 학생 중심 교육이 가능하다. 모든 학교에 보편적이고 평등한 교육 기회를 보장할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 있는 대책을 마련하라.
2025. 5. 8.